1919년 1월의 매일신보

참고로 매일신보는 개화기 무렵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던 '대한매일신보'에서 그 명칭을 따온 신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1910년 국권상실 이후 유일한 한글신문으로 남아 있던 '총독부 기관지'였을 뿐이었다. 이 무렵 매일신보의 편집장이었던 이상협은 이듬해 창간된 동아일보의 초대 '편집국장'을 맡게 되고, 1924년에는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언론 활동을 계속해나갔다고 한다. 이광수의 '무정'이 연재된 것도 바로 이 '매일신보'를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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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림 | 2009/05/28 00:28 | 溫故 ::: 기억/기록 | 트랙백 | 덧글(0)

또 한 번 기억되는 5월, 2009년.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줬던 저희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고 했다. 80년대 시위하다 감옥 간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 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뤄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경선후보의 연설 중)
* 사진은 폰카로 찍은 거라, 이해바랍니다. 대한문 앞에선 사진을 찍지 않았군요.

한마디 더

by 갈림 | 2009/05/26 00:35 | 寸鐵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0)

바보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별일없이 산다"의 가사처럼,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거다 / 뭐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없다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 오늘 밤 절대로 두다리 쭉뻗고 잠들진 못할거다 /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없다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었나봅니다. 5년 재임 기간동안, 욕이란 욕을 다 들어가면서도 얄미울 정도로 고집스럽게 꿋꿋하던 분이었으니까요.

귤을 슬쩍하는 범죄(?)에도 이렇게 태연한 척하는 대통령이었으니까요.

2002년 주변 사람들과 적지 않은 말다툼까지 해가면서 지지했었고, 또 탄핵열풍 당시 그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든 적도 있었고, 재임기간 이런저런 이유로 비판하기도 했었습니다. 잘못한 일도 많았지만, 한 일에 비해 과도하게 비난을 받고 놀림마저 받아온 그분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나봅니다.

검찰이 두어달간 '피의사실 유포죄'를 저지르면서 막가고 있을 때 그분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염려도 되었었지요. 그래도 그런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할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2009년 5월 23일 아침. 후배가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TV를 켜면서도, '그래 사실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곤 오히려 담담해졌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깨달았지요. 담담해진 게 아니라, 멍해진 것이었더군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있었습니다.

5년 재임 기간 동안에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보 시절 그 이름으로 상징되던 '가치', 그것이 그분과 함께 부러지고 피흘리며 떠나가는 기분이 듭니다.



그분을 보내드리더라도, 그 가치만큼은 그렇게 떠나보내면 안 되는 것이겠지요.
스스로 신화가 되고 역사가 되는 길을 택하신 분, 부디 편히 영면하시길.



by 갈림 | 2009/05/24 03:25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1) | 덧글(0)

득템 - AZ1856

그러니까 벌써 20년하고도 5,6년은 더 된 옛날 얘기인가. 그 옛날 8bit PC의 외부 기억 장치는 카세트 레코더였다. 60분짜리 카세트 테이프에 파일을 저장하곤 했는데, 당시 파일들은 몇 초 분량에 불과했기 때문에 중간중간 공백을 두고 파일 여러 개를 한 개의 테이프에 저장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시 파일을 실행하려면, 시작점을 찾기가 아주 곤란했다는 것이다. MDIR의 획기적 파일 관리 시스템이나 Norton의 다양한 소프트웨어 진용도 뭐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얘기일진대, 카세트 테이프에 컴퓨터 파일을 저장하던 시절 얘기는 완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 같구나. 암튼 그 시절, 삼성전자에서 야심차게 내놓았던 SPC-1000 인가 하던 PC는 키보드-본체-카세트 레코더 일체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어쨌든, 카세트 테이프라는 게 PC나 디지털 파일과 아주 거리가 멀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까지 음악을 좀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LP 외에도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기억을 갖고 있기 마련일거다. 아마도 그때는, 용돈 생기면 좋아하는 가수의 카세트 테이프 사 모으는 게 일이었던 시절이고, Sony의 Walkman, 삼성의 Mymy, 금성의 A-HA, 대우의 요요가 각축을 벌이던 시절이었을 테지. 그런데 그때 그 카세트 테이프들은 잘 듣게 되질 않는데다가 공간을 차지하고 먼지만 먹고 있어서 골치거리였다. 버려야할까 생각하다가도 좀 아깝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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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림 | 2009/04/22 23:54 | 日常 ::: 나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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